대선 1년전 여론조사의 허와 실




현 시점엔 유효, 대선결과 예단 일러




‘대선 1년전 여론조사’의 허와 실




2006-11-23 오후 2:08:35 게재





미래 돌발변수와 그에 따른 민심의 역동적 변화 반영 못하는 한계
97년 박찬종, 2002년엔 이회창 1위 … 실제론 김대중·노무현 당선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가 되면 각종 언론들은 앞다퉈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쏟아낸다. 누가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지, 여야 유력 후보는 누가 될 지, 또 그들이 맞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등등….
이같은 여론조사들이 대선 판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곧 대선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맹신은 금물이다.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대선은 그 생물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용트림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3 수험생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수차례 ‘모의고사’를 치르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곧 대학 합격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97년 1월, 박찬종-김대중-이회창 순 = 97년 대선 때의 일이다. 그해 1월 동아일보 자매지 ‘신동아’는 현대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당시 집권여당 신한국당에는 ‘9룡’이 대권을 향해 군웅할거하고 있었고, 야권에서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여야 후보들이 모두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 누구를 찍겠느냐’는 물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이는 박찬종 신한국당 상임고문이었다.
박 고문은 20.2%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19.2%)를 근소한 차로 앞질렀다. 다음으로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상임고문이 12.0%로 3위를 기록했고, 조순 서울시장이 6.2%로 뒤를 이었다. 신한국당 주자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박찬종·이회창 고문 순이었다.
‘세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야 후보를 망라한 조사에서 박찬종(27.4%)-김대중(20.4%)-이회창(19.0%)순이었다. ‘한겨레’가 실시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가장 바람직한 인물’을 묻는 조사에서는 박찬종(33.5%)-이회창(25.2%)순이었고, ‘한국일보’ 조사에서도 박찬종-이회창-이홍구 순이었다.
이같은 조사가 발표된 이후 정치권의 상황은 급변했다. 상도동계의 좌장이었던 최형우 고문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깜짝 놀랄 젊은 후보’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TK출신 김윤환 고문이 ‘킹메이커’를 자임하며 이회창 후보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신한국당 경선 판도는 급격히 이회창 대세론으로 기울었다.
줄곧 2등을 기록하던 김대중 총재는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이후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와 ‘DJP연합’을 통해 20만표차로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노풍’ 예상 못한 2002년 1월 여론조사 = 2002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 역시 실제 대선 결과와는 큰 편차를 보였다. 대선이 치러진 2002년 1월까지만 해도 2000년 총선 이후 이회창 총재가 30%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고, 여당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돼 있던 시점이었다.
2002년 1월 ‘한국일보’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31.7%로 부동의 1위를 달렸고,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16.8%로 2위,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8.3%)-민주당 노무현 고문(8.2%)-고 건 서울시장(4.6%)-무소속 정몽준 의원(4.4%)-민주당 정동영 고문(2.5%) 순이었다.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02년 1월 조사에서는 당시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이인제 고문이 37.8%로 가장 높았고, 노무현 고문(18.2%)-고건 서울시장(13.4%)순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 조사에서도 이인제(24.8%)-노무현(14.9%)-정동영(8.1%) 순이었다.
이들 여권 예비후보들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1:1 가상 대결에서는 이인제 고문과의 가상대결에서만 오차 범위 내에서 근소한 차로 앞섰을 뿐, 이 총재가 여타 모든 여권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섰다.
‘서울신문’ 조사에서는 ‘여당 대선 후보로 누가 유력한가’라는 물음에 이인제 고문이 44.6%로 노무현 고문(11.5%)을 세배 이상 크게 앞질렀고, 2002년 2월 실시한 ‘세계일보’ 조사에서도 이같은 큰 격차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일보’ 조사 한달 뒤 실시된 국민경선에서 광주 경선을 기점으로 ‘노풍’이 점화됐고 광주 경선 이전까지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는 ‘그땐 그랬지’라는 구문이 되고 말았다.
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실시된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대선 과정에 얼마나 여론의 진폭이 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은 지지율에 기대 안주하는 선두주자 지지율의 불안정성과 추격하는 후발주자가 여론의 역동성에 힘입어 급부상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007년 대선 과정 역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여론이 널뛰기를 할 지, 앞서가는 주자는 이같은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대비할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구자홍 기자 j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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