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절망 속에서 열망하는 ‘2007년 체제’의 꿈

절망 속에서 열망하는 ‘2007년 체제’의 꿈
[주장] 새로운 발전을 위한 사회대협약이 필요하다
텍스트만보기 최민식(newway40) 기자   
▲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서울 신촌 거리유세장에 찾은 시민들. 2002년의 ‘노풍’은 절망을 떨치려는 국민들의 열망의 꼭지점에 다름 아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망과 절망’

한국의 정치 현실을 해부한 정치·사회학적 규정이다. 한때 박찬종 현상, 조순 현상, 정몽준 현상과 보다 극적 사례인 2002년의 ‘노풍’ 마저도 열망의 꼭지점에 다름 아니다.

정권 말기에 국민대중이 당시 정권에 절망하고 다시금 다음 정권에 대해 열망하고, 또다시 그 정권의 중반 이후에 절망하기 시작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매우 뚜렷한 현상이다.

왜 그런가. 국민대중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이며 정치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원을 따진다면 바로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성격, ‘보수레짐’의 문제이다. 해방이후 한국전쟁과 5·16쿠데타에 의해 확립된 ‘미국-분단·반공-재벌-관료 체제’가 대한민국의 지배 주류라는 것은 아직도 불변이며 정당이 다기화된 계급·계층을 대표하지 못하고 ‘파벌-이권연합’으로 기능한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체제, 정당체제는 한마디로 현존하는 대중의 ‘삶의 요구’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2000년의 바꿔 열풍, 2002년의 노풍, 2004년의 탄핵반대 열풍 등은 기성 정치 지배층의 부패와 보수 일색의 협애한 대표성, 그리고 본질적인 민주개혁 요구(경제·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한 소외 현실을 극복하려는 민의의 집중적 표출이었던 것이다. 그 열망이 절망의 비수가 되어 집권세력을 심판하고 있으니 권력이 무상하고 세월이 무섭다.

진보의 대위기, ’87년 체제’와 ’97년 체제’

최근 연이은 열린우리당의 참패를 보고 진보-민주개혁의 위기를 이야기 한다. 2002년 최초의 민주세력의 단독 집권을 두고 그토록 열광했던 진보-민주개혁 진영은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토대에서의 삶의 위기가 진보-민주개혁 세력의 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진보-민주개혁이 무능하다고 규정받는 것도 실로 뼈아픈 일이다. 사실은 진보-민주개혁이야말로 삶의 불만을 조직하고 그 해결을 대표하는, 삶의 문제에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대상인식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무능하다는 것, 그것은 실질적인 비전과 전략 그리고 이를 실현할 제도적 수단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진보-민주개혁 세력이 만들고자 한 세상은 분명 민족과 국민대중의 꿈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데 왜 현실정치에서는 배신을 거듭하게 되는가.

’87년 체제’에서는 대통령만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다면, 그리고 민주권력이 민주정치를 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87년 민주화시대가 합의한 헌법은 그런 의미에서 미완의 민주헌법이다. 대통령에 집중된 나머지 정당과 국회, 시민사회의 민주적 기능을 본래적 지위에 올려놓지 못했다. 현실에서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반세기전 한국전쟁의 연장에서 북한을 규정하고 영토를 규정했고, 국민의 기본권은 근대적 선언 이상의 실체적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97년 체제’는 더욱 유감스럽게도 시장의 절대적 우위를 인정하고 국가를 시장에 굴복시키고야 만다. 미국식 세계화의 체제내화, U자형 사회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개혁의 성격은 민주 개혁이나 시장투명화 개혁이라기 보다는 시장만능주의를 제도화 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전환되었다.

압도적인 미국식 신자유주의, 삶의 불안에 위협받는 국민의 일상.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못찾는 정치 주체들, 정당과 정책에 대한 선호가 아니라 정치 행태에 대한 절망과 혐오감을 확대재생산하는 국민들, 이것이 2006년 절망스러운 한국 정치의 자화상이다.

절망스런 한국 정치의 자화상

▲ 2004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국회 본회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87년 이후 19년이다. 내년, 2007년은 87년 6월항쟁 20주년이고 그사이 노태우 정부,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정부’를 거쳐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이르렀다.

2007년 17대 대선은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년의 결산이자 미래 대한민국 20년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대선은 향후 20년, 아니 50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초 선거다.

보수-뉴라이트 세력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선진화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면, 진보-민주개혁 세력의 미래비전은 결국 박정희식 개발독재도 아니고 미국식 신자유주의도 아닌, 대한민국이 자신의 역사속에서 깨우친 진정한 선진화의 길, 즉 지속가능한 신발전주의 노선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치 체제, 레짐의 문제가 비전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무능의 원인이 뭘까.

대한민국 정치에는 정당이 아니라 ‘여와 야’만 존재한다. 대통령을 에워싼 경제관료들이 정책을 지배하고, 국회에서는 정당이 아닌 여당이 거수기 노릇을 반복하며, 한나라당은 국회법이 보장한 의사진행 합의권력을 이용해 정략정치에 몰두한다. 민노당은 13%의 득표에도 불구하고 의석수 규정에 의해 원내교섭권 조차 없다. 갈등은 대표되지 못하고 조정되지 못하는 무능의 수레바퀴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무능의 정체는 바로 현실의 레짐, 즉 헌법, 국회법, 정당법, 국가예산권, 경제정책 지배권 등에서 진보-민주개혁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법은 여러분야에 걸쳐 있지만 원칙은 하나다. 민주주의의 실천. 현 시기 민주주의는 삶의 문제가 중심이다. 또한 절차적 민주화 이후, 사회 각부문의 대표성과 자주성을 기반으로 통일적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내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 즉 ‘사회적협약’이라는 민주적 사고와 민주적 행동양식으로의 전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7년 체제는 결국, 사회적 지혜를 통해 진보-민주개혁의 새로운 비전을 확고하게 다지는 일과 함께 진보-민주개혁의 레짐을 구체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시작될 것이다.

지속적인 삶의 진보, 그 꿈을 포기할 수 없다

2007년 체제가 지향하는 꿈은 무엇인가. 바로 ‘삶의 진보’다. 만약 진보-민주개혁이 더 이상 해답이 없는 존재로 쓰러진다면, 국민들의 삶은 더욱 시장만능주의와 극심한 양극화에 내던져질 것이고 한반도 평화통일과 번영의 미래도 오지 않을 것이다.

2007년 체제를 위해 진보-민주개혁에게 주어진 숙제는 바로 ‘새로운 발전을 위한 사회협약’이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80년대의 아일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와 제 정당과 제 부문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국가적 발전 목표와 전략을 합의해 내야한다.

아일랜드는 국민대협약을 통해 10년만에 첨단 성장엔진을 장착하고 ‘3만달러 시대’로 도약했고 든든한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학습체제를 성취하였다. 지속가능한 발전, 그것은 꿈이 아니다.

삶의 정치는 삶의 조건에 근거한 정책 경쟁을 지향한다. 아직도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지역주의를 해체할 유일한 돌파구이다. 노동·교육·주거·의료·환경·복지 등의 부문에서 인간다운 삶을 지켜낼 방법이 있는 사회, 나아가 끊어진 민족의 맥이 다시 이어지고 한민족 공동번영의 통일한반도, 그런 사회를 향한 국민의 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국민의 꿈의 편에 굳건히 설 때, 새로운 정치도, 새로운 시대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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