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B, “정확히 봤다. 인터넷은 대의정치를 반드시 무너뜨릴 것이다”

몰지각한 2MB 정권의 또다른 발작이 시작되었다.
이런 독설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된다. 차마 점잖은 말로 표현하면 오히려 내 말뜻을 못 알아 들을 것 같기 때문이다.

2MB로 불리는 이명박, 역시 오늘도 그는 또다시 적을 만들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앞세우고 인터넷 공간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를 시작했다. 그러한 징후가 오늘의 언어로 묘사되었다고 생각된다.

오늘 이명박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개월간 촛불집회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을 것이다. 국정의 난맥이 여야간의 대립도 아닌 보이지 않는 국민과 인터넷 공간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과연 이러한 일을 생각이나 했을까? 인터넷을 알 수 없는 이명박은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촛불집회가 있던 그날 밤, 청와대 뒷산에 올라 놀라운 눈으로 봤을 것이다. 그것이 뉘우침이 아니었다.

분명, 이명박은 반성의 어조로 새로운 국정운영을 약속했으나, 그 등뒤로 칼을 갈고 있었다.
 


365일 의사당에 불이 켜지고 국민을 위한 정책이 생산되는 ‘창조의 전당’, 고함 대신 타협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소통의 전당’, 대립과 갈등, 백가쟁명을 녹여내는 ‘통합의 전당’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정부도 국회를 국정파트너로 존중하고 대화정치를 앞서 실천하겠습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정부와 국회는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모습을 통해 18대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국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다시 돌아와 이 논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상황의 판단은 분명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인터넷의 발달로 이미 대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얼마전, 한 노교수가 촛불집회를 향해, 대의민주주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정당정치가 소중하다는 주장을 해 논란이 있었다. 또한, 그런 측면에서 광장으로 나선 촛불은 이제 ‘귀가’를 하고 대의민주주의에 의지해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길 지켜봐달라고 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던 것
민주주의의 출발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닌가. 고대그리스 시대의 광장에서 시민들의 모여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직접 결정했던 것이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근대시대에 접어 들어 왕정에 반하여 시민혁명을 이루어지고 어쩔 수 없는 의회 중심의 대의민주주의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상공인 등 자본 계급 중심의  권력 계층이 시민을 대신하여 ‘왕권’을 견제하고 자신의 이익을 찾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 진정한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기제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이미 직접민주주의에서 변질된 대의민주주의는 그 태동부터 ‘왜곡’된 모습이었다.

네트워크 사회,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기에 대의민주주의는 불필요
대의민주주의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고대그리스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조건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일시에 수시로 모여서 국정운영을 결정하거나, 민의를 물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 조차 없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사회의 힘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다음아고라가 있었다. 사실, 이전의 다음아고라는 네티즌의 성토장이었다. 마치 그 옛날 신문고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토해 놓는 말 그대로 아고라였다. 그렇지만, 다음 아고라는 이 시대의 진정한 고민들이 모여있는 백화점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동굴과 같은 ‘소통의 벽’이었다. 결국 이른바 ‘아고리안’들이 세상으로 돌아선 것 뿐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지 않는 소리의 한계를 느끼고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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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탄핵에 대한 일성이 순식간에 100만명이 넘어서는 경이로운 움직임이 바로 이번 촛불집회의 전조였다. 그들의 힘은 바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민의 힘이고, 민주주의의 힘이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징후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고, 무시했던 것이 지금의 정국 혼란의 시초였다.

이런 모습은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이 될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네트워크 강국, 한국에서 가능한 모습이다. 모바일과 인터넷이라는 인프라 강국에서는 네트워크 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굳이 국민의 목소리가 직접 모아질 수 있다면, 왜 대의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대의제도였다면 촛불집회 역시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대의정치가 문제였기 때문에 ‘아고리안’을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제가 출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전 노무현대통령의 당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네트워크 민주주의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승리가 예견되는 가운데, 투표전일 단일화와 지지를 표명했던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하는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기제가 없었다면, 그렇게 순식간에 이러한 사실이 전파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인터넷 중심의 노사모 활동, 그리고 개혁당 등 네트워크 정치에 익숙해던 사람들이 몇 시간을 앞두고 새로운 정치 실험을 성공시킨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축적이 크게 부족합니다.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법질서를 지키는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과 권리가 돌아간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세워가겠습니다.


선진사회는 합리성과 시민적 덕성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demics)도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관용과 배려의 정신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관용과 배려는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 ‘화합과 동반의 시대’로 나아가는 귀중한 사다리입니다.


이러한 의식의 선진화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제계, 종교계, 교육계 등 사회 각 분야가 함께 해야 합니다. 국회도 이런 ‘의식의 선진화’ 물결이 곳곳에서 파도칠 수 있도록 앞장 서주시길 기대합니다.


대립과 분열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가? 경제대통령이라는 국민적 기대에 의해 당선된 사람이다. 그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막상 국민이 원하지 않는 위험적인 시도를 했던 것이 현 정부였다. 이런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신뢰를 거론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명박의 정보에 대한 불신은 누구보다도 높다.
정보는 왜곡된 것도 존재한다. 그 왜곡된 정보가 해로울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전반을 움직이는 왜곡된 정보는 존재하지 못한다. 많은 국민들이 정보를 되새김질하면서 정보는 자연스럽게 순화작용을 하고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즉, 처음 정보가 잘못되었다면, 그 정보를 본 다른 사람들이 수정하게 되어 있다. ‘공유’라는 작용이 있어서 공개된 정보일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력에 의해 움켜지는 정보, 혹은 일부 언론에 의해 장악된 정보의 경우가 더 왜곡되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관용과 배려의 정신을 주장하기 전에, 이러한 사건의 발단이 누구로부터 기인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쇠고기협상 이후 수많은 반박논리와 해명을 해야했다. 외신으로부터 확인된 정보가 곧바로 인터넷을 타고 국내로 들어왔다. 폐쇄된 사회가 아닌 지금은 13시간을 날아가야 볼 수 있는 나라의 소식을 클릭 한번으로 누구든지 확인 가능한 시대이다.

국민 개개인의 정보력과 분석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국가가 막으려고 한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국가가가 공개한 쇠고기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이다. 그 확인 역시 국민 스스로 해냈다. 결국 정부는 두손을 들고 재협상을 해야 했지만 추가협상이라는 ‘눈가리고 아웅식’ 입시방편만을 내 놓았다.

이번 촛불집회는 향후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경험은 우리 정치사의 100년 변화의 출발이다.

국회 등 정당정치의 폐해는 이미 수없이 거론되어 왔다. 지난 총선에 보여진 낮은 투표율은 이런 반증이다. 이명박은 인터넷이 대의정치에 도전할 것이라 했지만, 분명 정확한 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대의 정치, 정당정치 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멸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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