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에게는 반면교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놓고 설왕설래하면서도 많은 국민들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이전의 정부와 비교를 해도, 그 통치 스타일은 ‘과거 지향’적이라는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반면교사(反面敎師) :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가르침을 얻는다

반면교사라는 말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에 마오쩌둥이 한 말이라는 설이 있다. 즉,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를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철학의 변증법적인 의미가 내포한 듯하다. 즉,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론에 의해 아무리 부정적인 측면이라 할지라도 그안에 새로운 발전의 힘이 있기에 자세히 살펴보고, 새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에는 이런 반면교사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이명박 정부의 통치 스타일을 과거지향적이라 하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먼저, 국민도 이해할 수 없는 반민주적 악법의 부활이다. 지난 여름, 온 나라의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문화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에 대한 정부의 대응 태도이다. 정부는 거센 촛불 문화제의 위력 앞에서, 자성의 모습을 비추는가 싶었다. 그러나 민심이 반영된 결과에 대한 반응보다는 악화되고 있는 시위의 주체에 대한 구속과 수사가 진행되었다. 결국, 민심이 왜곡되고, 소통의 부재라는 나쁜 결과가 도출되었다.

두번째, 최근 강만수 경제팀 경질에 대한 정치권의 설전이다. 강만수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의 오락가락 환율 정책에 의해 우리 경제의 위기론이 심화되었다. 또, 최근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사상 최대였다. 5년간 26조원이라는 세금 감소를 가져다는 주는 중대 결정이었다. 그러나, 세금 감면을 통한 기업 활동의 증가, 그리고 그에 따른 세수 증가라는 처방은 이미, 미국 레이거노믹스로부터 실패한 정책임이 확인된 바였다.

즉, 세금을 줄이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해 경제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세금 징수의 대상이 되는 경제규모가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율을 낮추어도 실제로 징수는 세금액은 늘어나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

한국일보(9월 8일자) 손호철의 정치 논평에 따르면, 이러한 경제정책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데이비드 스톡만이나는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미 정부의 예산청장인 스톡만에 의해 주도된 레이거노믹스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일부 한나라당 내에서의 비판적 시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확인된 실패한 감세정책을 시도하는 무모함이 이 정부에 존재한다.

셋째, 이 전 정부에 대한 과도한 칼날은 결국 자기 부정으로 귀착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면, 일정한 수준에서 과거 정부에 대한 부정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게 마련이다. 독재 정권 시절에도 암묵적으로 이전 정부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전 정부와의 과도한 차별성은 ‘집토끼’를 잃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는, DJ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에 관련된 자금에 대한 수사를 허용했다. 이러한 결과는 민주당의 분열을 야기했고, 급기야 호남지역의 지지 하락을 가져왔다. 3김시대의 완전한 종지부를 찍어 지역정치를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화 전략은 결국 노무현 정부 집권 내내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이전 정권 측근 비리 수사 역시 정권 차별화 전략이라 여길 수 있다. 봉화마을의 대통령기록물 수사에 대한 청와대와의 설전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국민은 의구심보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어진 측근 비리 등등 역시 ‘반면교사’라기보다는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하는 의혹을 받기 쉽상이다.

대통령은 재직시에 그 어떠한 잘못을 하더라도 형사적으로 소추되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이 있다. 이것은 재직시 통치권한을 보장해 다른 정치집단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통치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헌법적 권한에 대해 국민들은 크게 회의를 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지만,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국민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형사적으로 소추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퇴임 후, 역사적인 평가이다. 재직시에 국민으로부터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것은 결국 ‘결과로부터의 평가’가 남게 된다. 결과의 대상은 이전 정부와 비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권의 출발은 이전 정부의 반성과 그에 따른 극복과 새로운 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바로, 역사의 발전 속에 반면교사해 역사의 흐름이 거꾸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이 첫번째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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