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소통 국가?

대한민국의 주요 화두 중에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정책 면에서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한다. 여의도의 정치권과 정당에서도 선거의 승리와 패배를 따질 때, 소통을 언급하고 그 해법 역시 소통이라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기도 한다. 

소통은 국가정책당국과 정치권에서만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과 기업 등에서도 “소통”은 줄곳 강조되어 오고 있다. 소비자와 소통을 통해서 마케팅을 강화하고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또는 기업과 기업간에도 소통이 중시되고,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관리직급 노동자와 관리받는 노동자급 사이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소통이 좌우하고 있는 국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 http://blog.skenergy.com/631 에서 인용함.


소통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한다는 의미


과연 소통이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분야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일까? 소통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소통 : (네이버 한국어사전 중에서)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소통 : (네이버 영어사전 중에서)

1. communication, communicate.

한국어사전 뿐만 아니라 영어사전에서도 소통은 “서로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만큼 소통이라는 것은 혼자 있을 때는 필요하지 않고, 상대가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등의 비사물적 존재에도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즉, 폭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있고 또다른 상대가 있을 때 소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없다면 어떤 물체가 있더라도 교신하고 소통하는 것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통의 첫번째 조건은 사람, 두번째 조건은 상대

즉, 소통에는 중심에 서서 교신하고 통신하는 인간이 존재하고, 서로 통하고 싶은 상대 또는 비사물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번째 조건은 사림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 조건은 상대(사물을 포함한)가 존재해야 한다.

소통의 세번째 조건은 상대를 위한 공간과 여유 그리고 배려

세번째 조건은 사람에게 소통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자세이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공간 속에 상대의 존재, 의사, 의식 등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 정치권에서 소통을 강조하지만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또는 국민의 주장을 수용하려고 하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통을 강조하는 집단은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집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전의 계급주의적 사회 또는 중앙지권적 사회에서는 권력자 또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을 강조하지 않았다. 권력과 자본이 바로 힘이고 명령이 되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집단은 또한 학문과 예술도 장악하고 있어서 지식권력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세 미술과 음악사를 보면, 많은 창작 예술가들이 왕이나 귀족들에게 생활을 의탁하고 그들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것은 바로 권력자들을 위한 의탁 관계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즉, 지식권력은 자본이나 기존 권력에 포함되어 왔다. 


소통은 교육과 통신의 발전으로부터 태동되었다


또한, 민중은 교육에 기회가 제한되어 있어서 지식을 형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근대 사회 이후에 교육의 기회는 확대되었고 일반인 특히 상인과 지식층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로 시작해 의무교육 학대, 여성교육의 확대 등의 새로운 지식 문화가 형성된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가 소통의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다른 소통의 토대는 통신의 변화다. 이웃과 이웃이 언제든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사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화기, 라디오, 텔레비전 등 내 가족 뿐만 아니라 먼 거리의 소식과 정보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통신과 장비 등의 발명으로 사람은 이제 자신의 동네에서 국가, 전세계로 시각이 넓어지고 소식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통신의 발명은 자신의 환경, 지식과 경혐의 교류 등을 하게 되어 민중의 “집단지성”이 형성된다. 


집단지성을 가진 시민을 견제하는 권력이 소통을 강조한다


집단지성의 만들어지면서 소통을 강조해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권력자는 피지배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권력자는 자본, 지식, 통신, 정보 등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민중은 지식이 확장되었고, 통신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와 경혐이 생겼다. 또한, 근대 이후의 혁명과정과 투표 등을 통해서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경험도 해 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집단지성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권력자에게는 언제든지 부상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는 소통을 강조한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은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또다른 편에서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기능도 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몸체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측면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보는 시각이 다르지만 “동전”이라는 존재는 같다. 시민들은 소통을 통해, 올바른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권력자는 소통을 통해, 시민의 의견을 “일부”반영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 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밀땅”을 하는가에 따라 소통의 효과를 보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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